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등록일 2015.01.09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방황하며, 쫒기며 살던 생활을 끝내고, 꿈을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흘렸던 눈물도 이젠 조금씩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대신에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삶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하나원 교육을 수료하고 사회의 첫 발자국을 내 디디던 그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우선은 정부에서 배정해준 아파트에 가족들과 함께 첫 보금자리를 틀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직업훈련도 받았다. 생각보다 쉽게 회사에 입사하여 직장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여 첫 월급도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난, 늘 꿈만 같은 날들만 있을 줄 알았다. 당시 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여러 가지 시간제 일을 하다가 버젓한 회사에 입사 하게 된 것은 2003년 3월이었다. 구인구직 광고를 보고 찾아가 면접을 봤고, 입사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내가 들어간 회사는 전자회사였는데, 세라믹, 아이씨, 콘데서 같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부품을 보고는 이렇게 정밀한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 해보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게 무엇 있어? 그래 해보자. 해보는 거야!” 

이렇게 결심하고 출근 하였다. 출근하여 보니 입사동기들이 여러 명 있었고 반장으로부터 일할 공구들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LG전자의 하청업체로, 생산된 제품은 완벽하여야 했고 작은 불량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남북으로 갈라져 산 7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7년을 살다 온 나는 말하는 억양이 투박하고 또 한국문화도 잘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언어 문제로 입사 동기들끼리 분쟁도 많았다. 한번은 입사동기들이 나에게 “연희씨 연희씨” 부르기에 나도 동료들을 그렇게 불렀다. “경자씨, 정금씨” 이렇게. 하지만 어느 날 부터인지 동료들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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