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을 통해 배운 한국정착생활

등록일 2015.03.12


몸과 마음을 모두 망친 후에야 나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뒤늦은 깨달음 뒤에는 인생의 실패자이자 시대의 낙오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엄습하여 좌절감을 더해주었다. 몇 달 간 좌절감으로 방황하고 있다가 정착도우미선생님의 조언으로 대안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상한 점은 모든 강사가 자원봉사자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무보수로 아이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행하는 자원봉사프로그램도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도시락을 전해주고 온 후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허리가 휘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어두컴컴한 방에 홀로 계시던 김할머니는 고향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나게 했다.

우리 할머니도 허리가 휘여서 동네에서는 꼬부랑 할머니로 불리며 혼자 사신다. 공안의 박해로 할머니를 끝까지 보살피지 못하고 고향을 등졌기에 미안한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다. 지금쯤 우리 할머니도 엄동설한에 혼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고향할머니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활동에 임했다. 그냥 도시락만을 건네지 않고 방청소, 말동무도 해주었다. 김할머니가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시거나 귤이나 삶은 감자를 건네면서 고마움을 표시할 때면 고향에 두고 온 할머니에게 못다 한 효도를 다하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운동량이 부족한 지체아동을 운동시키는 특수체육도 마찬가지였다. 지체아동이지만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아동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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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 - 2030 당신의 목소리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