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봄날

등록일 2015.06.18


북한에 있으면서 내 삶은 더 잘살기 위함이 아닌 그냥 살아 남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품안에 안겨서 먹을 것 좀 달라고 떼를 쓰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아... 조금만 더 참자. 엄마가 우리 아들 배고프게 해서 미안해...” 라고 하시며 있는 힘을 다해 꼭 끌어 안아주시며 소리 없는 아우성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 6살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인간다운 식사 한 끼라도 해 보자!’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버리고 고향을 등졌습니다.

중국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살던 저에게 학교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림의 떡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제 또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걸 보면 부러워했습니다. 키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학교 담벼락 밑에서 까치발을 들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훔쳐보았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간 뒤 조용히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서 늦은 밤까지 혼자 놀곤 했습니다. 언제 중국 공안들에게 잡혀서 북송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저에게 ‘학교’란 사치였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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