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더한 고통

등록일 2015.08.11


어릴 적에 피가 무서웠다.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칼 같은데 손가락이 베이면 아파서보다 피 나는 것이 무서워 엉엉 울었다. 피 흘리는 장면이 많은 전투영화 같은 것을 보다가도 선혈이 낭자한 화면이 펼쳐지면 무서워서 두 눈을 꼭 감았다.

중학생시절 어느 날이었던가? 그 때부터 피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쟁터나 사고현장이 아니면 피를 목격할 일이 드문 남자에 비해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불가피하게 피를 본다. 결혼해서 임신해 아이를 낳을 때 피 흘리며 겪던 그 산고는 세상이 통째로 깨지는 듯한 아픔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런데 살면서 더 잘 알게 됐다. 깨진 무르팍이나 베인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엄살 부릴 때는 행복한 때였다는 것을, 또한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은 이후에 찾아온 환희, 새 생명이라는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아픔, 피 보는 것보다, 피 흘리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피도 안 나는 고통이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수많은 북조선주민들이 굶어죽었다. 너도나도 변압기를 뜯어가고 전기 줄을 자르고 길가의 망홀 뚜껑을 훔쳐 중국제 밀가루와 바꿔먹었다. 내가 아는 한 분이 전기 줄을 자른 죄로 시범껨으로 공개 총살당했다. 가족들은 그 앞으로 끌려가 지켜봐야 했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 전기 줄을 자른 가장을 반역자라고 타도해야 했다.

<중략>

VOICE - 2030 당신의 목소리로 시..